매거진R
[맛있는이야기]
한정식, 한 상에 담긴 한국 식사의 구조

한정식은 한국 식문화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호출되는 말이지만, 동시에 가장 오해받는 개념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한정식을 ‘반찬이 많은 밥상’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한정식은 단순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내는 가짓수와 양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상 위의 모든 음식에는 각각의 역할이 있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무엇으로 맛의 균형을 맞추며, 음식들이 어떤 순서와 흐름으로 놓이는지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짜임 있는 한 상이다.
시대가 변화하며 한정식의 갈래도 다양해졌다. 오늘날 한정식은 전통 한정식, 모던 응용 한식과 구분되는 용어로 쓰인다. 전통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율된 형식, 그 경계 어딘가에 현재의 한정식이 자리한다.
예를 들어 상견례 장소를 정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상견례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양가가 공식적으로 마주하는 자리이며, 설령 안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일종의 의례다. 이때 어울리는 식당은 어디일까.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고, 별도의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익숙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리에는 격조와 단정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이 상반된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선택지로 많은 이들이 한정식을 떠올린다.
다만 한 번에 모든 음식이 차려지는 전통적인 제공 방식보다는 몇 단계에 나누어 음식이 이어지는 구성을 선호한다. 적당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음식이 대화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리듬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본래 한식은 ‘밥 중심 구조’라 할 수 있다. 밥 한 숟가락에 어떤 찬을 곁들이느냐에 따라 맛의 결이 달라지고, 그 선택은 전적으로 먹는 이의 몫이 된다. 이 자유로운 조합 속에서 한국 식사의 다층적 경험이 완성된다.
그러나 외식 공간에서의 한정식은 점차 서양의 코스 형식을 일부 수용해 왔다. 죽과 전채, 주요리, 식사, 후식의 순으로 이어지며, 가격대에 따라 가짓수가 조정된다. 구절판이나 신선로, 전채 요리 등은 하나의 완결된 요리로서 밥 없이도 즐길 수 있도록 간을 절제해 구성된다. 전통주뿐 아니라 와인과의 페어링 또한 자연스러운 옵션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한정식의 구성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맛의 깊이, 담음새의 절도, 식재료 선택의 철학, 그리고 한 상 안에서의 균형과 정교함은 식당마다 크게 다르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의 지역성이 더해지면서 각 업장은 자신만의 해석과 차별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상견례와 같은 격식을 갖춘 접대 자리부터, 한국 식사의 구조를 온전히 체험하고 싶은 이들에게까지. 국내 미식의 최전선에 있는 서울 한정식 맛집을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
정성과 인내의 기본을 지키는 한정식
봉래헌
23년 전 문을 연, 김포공항 인근 메이필드 호텔 내 한정식. 호텔 레스토랑이라 하면 으레 건물 안을 떠올리지만, 봉래헌은 아름다운 정원 속 한옥풍 단독 기와 건물에 자리한다. 전통 한식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은 ‘기본’에 더 집중해왔다. 김치는 물론 된장과 간장까지 직접 담가 쓰며, 손맛의 깊이를 쌓아간다. 특히 구절판은 정교한 칼질에서 이미 감탄을 자아낸다. 얇은 밀전병 위에 가지런히 올려지는 채소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공예에 가깝다. 신선로 또한 모양에 치중한 전골이 아니라, 생새우를 구워 우려낸 맑고 시원한 육수로 깊이를 더한다. 자연을 품은 정원, 창이 보이는 별실 구성까지 어떤 손님을 모셔도 부족함이 없다.

주소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 94 메이필드호텔 봉래헌 / 전화 0507-1420-9020 / 메뉴 진연 110,000원 부터~ / 인스타그램 @mayfield_hotel
김치 명인의 자부심
봉우리
봉우리는 대한민국 식품명인(김치 부문) 이하연 명인의 한정식 브랜드다. 주택을 개조해 운영하던 시절, 마당에 사계절 김치 항아리가 마당에 있던 풍경은 상징과도 같았다. 겨울이면 땅속에서 꺼낸 아삭이던 김치에서 깊은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현대화된 공간으로 옮겼지만, 김치에서 시작된 기본기는 여전하다. 직접 말린 굴비, 묵은지와 곁들인 생선회, 김장아찌, 민어와 보리비빔밥 등은 한 접시 안에서 생선과 채소, 고기와 김치가 균형을 이룬다. 전통의 토대 위에 세련된 차별화를 얹은 한정식이다.

주소 (역삼본점)서울 강남구 논현로94길 25-3 2층 / 전화 0507-1402-8551 / 메뉴 식객정식 78,000원 부터
주소 (을지로점) 서울 중구 을지로5길 26 미래에셋 센터원 B1 / 전화 02-6030-8960 / 메뉴 봉우리정식 65,000원부터
인스타그램 @bongwoori_kr
남도의 뿌리를 올린 품격
해남천일관
전라남도 해남의 맛을 서울에 옮겨와 뿌리내린 남도 한정식. 외할머니 대부터 이어온 가업으로, 이화영 대표가 3대째 명맥을 잇고 있다. 해남의 ‘천일식당’이 떡갈비 중심의 백반형 한식을 선보이고 있다면, 서울의 해남천일관은 남도 음식의 깊이를 품격 있는 상차림으로 재해석한다.
물김치, 손으로 두들겨 식감을 살린 떡갈비, 묵은지, 홍어삼합, 토하젓, 반지김치, 꼬막전, 뜸부기국 등 서울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남도의 제철 음식이 상에 오른다. 안정된 서비스와 단정한 공간은 접대 자리에도 손색이 없다.

주소 (본점)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39길 36-1 1층 / 전화 02-568-7775 / 메뉴 점심&주말종일_심(心) 65,000원 부터
주소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 에비뉴엘 잠실점 6층 해남천일관/ 전화 02-566-7875 / 메뉴 심 (心) - 종일 식사 60,000원부터
인스타그램 @haenamcheonilgwan
서울 속 교외의 정취
한가향
도봉역 인근에 위치한 한가향은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한적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담양 기순도발효학교를 졸업한 한승윤 대표는 ‘근본을 지키는 한정식’을 실천한다. 오이선, 탕평채, 구절판, 신선로, 족편 등 손이 많이 가는 기본 음식들이 정갈하고 단아하게 차려진다. 식당 뒤편 장독대에는 직접 담근 장이 익어가고, 돌계단을 오르면 2만㎡ 규모의 정원이 펼쳐진다. 모과나무와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서울에서 즐기는 작은 여행길 같은 한정식이다.

주소 서울 도봉구 도봉로169길 202 / 전화 0507-1467-7726 / 메뉴 화양코스 38,000원 부터
인스타그램 @hangahyang_inc
세월이 증명한 접대의 진수
두레 국립현대미술관서울점
밀양 출신 이숙희 대표가 37년간 인사동에서 운영해 온 두레는 2022년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내로 이전했다. 오랜 세월 정재계 인사들의 접대를 책임져온 한정식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최상의 식재료를 구하고, 된장과 고추장 등 장을 직접 담근다. 절기에 맞춘 음식 구성은 한식의 시간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미술관 안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보다 세련된 분위기를 더했지만, 음식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내외국인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한식의 얼굴이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 전화 02-732-2919 / 메뉴 디너 국화 71,500원부터
인스타그램 @doore_mmca_official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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