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R
맛의 파도를 기록하는 눈
< 다이어리알 대표 이윤화 >
‘맛집’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널리 쓰이지 않던 시절부터 <다이어리알 레스토랑 가이드>를 발간해온 이윤화 대표는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쌓으며 식문화의 흐름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있다.
외식 트렌드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펴낸 <다이어리알 레스토랑 가이드>의 시작이 궁금해요.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후 건강식품 회사에서 일하다 1996년 잡지 <쿠켄>의 요리연구소에서 요리를 하게 됐어요. 2000년 닷컴 붐이 일어나면서 설립된 쿠켄네트에서 레스토랑 가이드, 요즘으로 치면 ‘맛집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2009년, 다니던 쿠켄네트를 인수해 오너 겸 대표이사가 되었고, 그때 ‘매일 쓰는 맛집 일기’라는 의미를 담아 ‘다이어리알’로 사명을 변경했어요.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시작되는 무렵이었던 만큼 앞으로 모든 콘텐츠와 정보의 중심은 온라인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다이어리알 레스토랑 가이드>는 몇몇 미식가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전문가, 기자, 네티즌의 실제 방문과 평가를 바탕으로 레스토랑을 선정해요. 단순한 맛집 소개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외식 콘텐츠로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을 지향하죠.
2017년부터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를 매년 출간하고 있죠?
단순한 맛집 소개를 넘어, 외식 문화의 흐름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미식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왔어요.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를 매년 발간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일반 소비자들뿐 아니라 외식업 종사자들에게도 인사이트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교육과 컨설팅도 병행하면서 외식산업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나가고 싶은 바람이 항상 제 안에 자리하고 있죠.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맛집’이라는 용어가 있었나요?
다이어리알의 전신인 쿠켄네트가 생겨나기 이전은 텍스트 기반의 PC 통신 시대였어요. 이후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다이어리알이 오픈했고요. 당시에는 주요 일간지에 맛집이 소개되면 다음 날부터 사람들이 길게 늘어설 만큼 종이 매체의 정보에 의존하는 시대였어요. 지금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쇼트폼이 대세지만요. 요즘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생산한 콘텐츠를 교차 검증해 식당을 선택하는 시대예요. ‘맛집’이라는 단어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였어요. 당시에는 ‘레스토랑’이란 단어가 더 보편적이었고, 맛집은 캐주얼한
분위기의 일반 식당이나 분식집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죠. 이후 SNS가 발달하면서 맛집이라는 표현이 대중화되고 동시에 단어 자체의 임팩트는 다소 옅어졌어요. 지금은 흑백요리사, 미슐랭, 유명인 이름 등 맛집을 수식하는 정보가 필요해졌죠.
음식을 대하는 태도 중 과거에 비해 특히 두드러지는 점이 있다면요?
저도 쉽게 ‘맛집’이라는 단어로 음식점을 통칭해볼게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맛집의 장르가 다양하지 않았어요. 한식 외에는 프렌치, 이탤리언조차 ‘양식’으로 뭉뚱그려졌죠. 상대적으로 익숙한 한식은 지금처럼 백반, 한정식, 고깃집, 아구찜, 해장국, 홍어삼합 등 업종이 세부적으로 나뉘었고요. 오랜 세월 깊은 맛을 이어온 노포가 많았기에 서비스나 공간의 쾌적함보다는 ‘맛’을 중심으로 평가하곤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서비스, 인테리어, 가격 등의 관점에서 식당의 수준을 가늠하는 변별력이 약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의 맛집은 단순히 배고플 때 가는 끼니 해결 장소나 행사용 접대 공간이 아니에요. 패션이 개성을 나타내는 척도 중 하나인 것처럼 ‘당신은 어떤 맛집을 즐기나요?’라는 질문만으로도 개인의 취향과 사회적 성향을 엿볼 수 있을 정도예요. 그만큼 선택지도 많아졌고요.
한때 뜨는 트렌드로 주목받았지만 빠르게 관심이 식어버린 것들이 많아요. 대표적으로는 로봇 커피가 있죠. 특히 흥미롭게 관찰해온 변화가 있나요?
로봇 커피는 아직 초기 단계라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 내려주는 커피와 다를 바 없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될 것이라 봐요. 결국 시간문제죠. 게다가 인간이 못하는 부분을 테크가 해결해줄 거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와인은 자연에 의존한 발효 음료라 생각하지만 그 이면엔 과학적 양조 기술이 있죠. 인간이 10년 걸릴 일을 AI 기술로 1년 이내에 끝낼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국내외 ‘뉴 미식’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한식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어요. 한식의 근간인 ‘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시대에 맞게 구현한 한식이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살아남을 거라 봐요. 한식의 근본인 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하고자 문을 연 ‘기순도 발효학교’는 과연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었지만, 서울에서 주목받는 파인다이닝 셰프들, 대기업 연구원들까지 찾아오는 등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어요. 모양새로 차별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요리에 자기 철학을 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근본적인 것을 알아야 하죠. 요즘 셰프들은 굉장히 똑똑하잖아요. 근본을 배우기 위해 발효학교의 문을 두드리더라고요. 근본을 지키거나, 근본을 바탕으로 응용한 것들이 오래갈 것이라 봐요.
젠지들이 미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전 세대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지금의 젠지도 이전 세대와 유사한 패턴을 따른다고 볼 수 있어요.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지만 미식 취향은 정보에만 의존할 수 없고 직접 경험해보는, 즉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죠. 젠지와 이전 세대는 온라인 검색 역량에 따른 정보량만 차이 날 뿐, 미식 경험의 축적 속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누구나 하루 세 끼를 먹으니까요.
미래에도 절대 망하지 않을 직종으로 외식업이 꼽히곤 해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맛있는 걸 먹고 즐기고 경험해야 하니까요.
인류가 생존하는 한 외식업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외식업의 생존과 AI의 발달은 ‘다른 차원의 고민’이라 생각해요. 서빙 로봇, 조리 로봇, 예약 대행 서비스, 첨단 포스 시스템 등은 현장 인력을 보충하는 물리적 효율을 가져왔어요. AI의 발전은 미식의 방향 자체를 바꿔나가고 있죠. 맛의 배합, 메뉴 개발 등 고차원 영역에서도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AI 기반 서비스가 보편화되더라도 외식업의 본질인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미식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효율적이지만 굳이 사람이 하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듯 말이죠.
요즘 맛집 콘텐츠가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어요. ‘먹을텐데’나 ‘또간집’에 나오는 식당 앞에 줄 서는 게 ‘국룰’처럼 되어버리기도 했고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맛집에 열광할까요?
맛집 또한 하나의 경험이자 유용한 콘텐츠예요. 유명한 맛집에 다녀온 것이 일종의 과시의 수단이 되기도 하죠. 줄을 서서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도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한국은 주변의 시선과 트렌드에 민감한 시장으로 맛집 쏠림 현상에서도 경쟁과 밀집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죠. 물론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실시간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른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경쟁적으로 앞서 경험하고 또 다음 유행으로 갈아타는 속도가 엄청나죠. 최근 여러 글로벌 외식 브랜드가 한국을 아시아권 진출의 테스트 시장으로 삼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가 작용했다고 봅니다.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미식을 즐기는 요즘, 미식 트렌드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울 듯해요. 파인다이닝과 노포가 동시에 주목받는 흐름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미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파인다이닝의 특별함, 노포의 스토리 등 맛을 뛰어넘어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다만 관심도가 높은 곳에 쏠리는 ‘따라 미식’ 성향은 여전히 강해요. 이런 단계를 넘으면 ‘진정성 미식’의 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전통 음식에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음식이 인기를 얻고 있어요. 이는 일시적 유행일까요?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입히는 시도는 늘 있어 왔어요. ‘어떤 유행’이 강세를 보이느냐가 관건이죠. 최근 세계 미식의 중심지에서 한식 터치가 가미된 파인다이닝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K-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자리하고 있어요. 한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하나의 중요한 글로벌 식문화로 자리할 것으로 봐요. 대중적인 불닭볶음면부터 아토믹스 같은 파인다이닝까지 한식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해진 것이 확실한 지표라고 볼 수 있죠.
맛 이외에 요즘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트렌드, 풍부한 스토리, 음식과 어울리는 서비스, 위생 등 다양해요. 이 또한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의 영역이죠.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생’과 관련한 요구가 매우 높아졌어요. 식당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다 보니 기본적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고요. 위생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식당들은 고객의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오픈형 주방을 선택하기도 해요. 같은 맥락으로 식재료의 원산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의 맥을 짚고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쉬지 않아야 해요. 피아니스트들이 매일 쉬지 않고 연습을 하잖아요. 손이 굳으면 안 되니까요. 이건 모든 분야에 해당되겠지요. 늘 새로운 정보에 촉수를 세우고 배워야 하며, 수시로 외식 현장에 가서 분위기도 느끼고 먹고 즐겨봐야 해요. 핫한 공간에 가서 직접 경험하고 ‘왜 요즘 사람들이 여기를 좋아하는지’ 나름의 해답을 찾다 보면 커다란 흐름과 트렌드가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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