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R
[길라잡이 맛집]
시간을 녹여내듯 만드는 제천 '천천히 맛집'
특정 지역에 가서 맛집을 찾을 때, 선택 지표로 ‘향토성’을 고려할 때가 많다. 과연 음식의 ‘향토성’은 무엇일까? 보글보글 끓고 있는 푸근한 뚝배기 된장찌개, 시골 마당에서 먹는 백숙, 지역 식재료와 비법으로 만든 요리 등 사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를 것이다.
스페인과 프랑스 영토에 걸쳐 있는 강한 전통과 미식을 자랑하는 바스크 지역을 여행하던 중, 중세 성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스페인 북부 라구아르디아(La Guardia)에 있는 식당에서 노르스름한 소스에 담긴 대구뽈살 요리를 먹은 적이 있었다. 폭신한데도 무겁지 않은 소스가 생선과 무척 잘 어울렸다. 감동하여 어떻게 만들어진 소스인지 물으니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저 “올리브 오일로 만들었다”라고.
버터도 안 넣고 달걀노른자도 없이 노란 빛깔을 내다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집요하게 알아낸 결과 비법은 조리 방식에 있었다. 마늘을 절구에 빻고 오일을 조금씩 천천히 넣어 완전히 섞이면 또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의 조리였다. 현대인에게는 성능 좋은 블렌더가 있어 달걀노른자까지도 한꺼번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농후한 소스가 단숨에 만들어진다. 굳이 오일을 느리게 조금씩 흘려가며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바스크 지역에서 먹었던 아이올리소스는 ‘천천히’ 순서를 지키고 시간을 녹여낸 맛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발효된 묵은 된장으로 끓인 토장국 마냥 말이다. 세월의 변화에도 묵묵히 수고로움을 쏟는 것. 그 이후 나에게 향토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천천히’라고 말하곤 한다.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세월이 담긴 아름다운 저수지 ‘의림지’가 있는 충북 제천엔 ‘천천히’ 맛집이 많다. 귀한 재료를 생략하지 않고 넣은 추어 육수, 홍두깨로 매일 밀어 만드는 손칼국수, 직접 담은 장으로 만든 강된장이 있는 ‘천천히’ 맛집을 추천해 본다.
#대추야
제천약초시장 내 자리한 작은 추어탕집. 황기, 구기자를 넣은 밑국물에 채소, 버섯이 듬뿍 들어간 마일드한 된장국 스타일. 주인 할머니는 돌아가신 남편의 병간호로 건강식을 만들다가 식재료의 달인이 되셨다. 두 번 빻은 고운 들깻가루, 생강나무꽃차로 달인 음료 등 정성의 모둠이다. 바로 치유의 추어탕.
대추야 외관 및 추어탕
충북 제천시 원화산로 121 010-9588-3660
한방가마솥추어탕 7,000원 해물야채전 6,000원
#춘양옥국시방
홍두깨로 직접 밀어 제면하는 칼국수와 손만두를 취급한다. 내외관은 소박하나 음식 맛에는 정성이 가득 깃들어 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멸치 베이스의 황금 배합 육수를 만들고 아들은 홀 한쪽에서 칼국수 반죽을 밀고 있다. 면발이 기분 좋게 야들야들하다. 손칼국수, 손만두, 김치, 보리밥 모두 깔끔하여 또 가고 싶어진다.
춘양옥국시방 칼국수 및 외관
충북 제천시 하소로 13 043-642-0394
칼국수 8,000원 칼만두국 9,000원
#제천시락국
제천역 인근의 시래기 전문점. 부드럽게 손질된 시래기로 만든 밥 위에 고운 깨소금이 듬뿍 뿌려져 나온다. 어릴 적 맡았던 깨 향이다. 보기엔 멀건 국처럼 보이나 한 숟가락만 맛봐도 깊은 시래기된장국에 매료된다. 돼지감자, 여주 등의 모둠간장장아찌, 표고버섯, 양파가 듬뿍 들어간 강된장 등 모든 것을 손수 만든다. 진정한 어른의 맛이다.
제천시락국 외관과 시래기밥, 시래기국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2길 16 043-642-0207
시래기밥 10,000원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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